고통이 우리를 거듭나게 하느니

인문사회 > 종교  by 무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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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정보

분야
인문사회 > 종교
작가
무각
출판형태
종이책
인쇄컬러
표지-컬러, 내지-흑백
판형
A5
페이지수
180p
출판사
부크크
ISBN
979-11-272-9848-7
출판일
2020.02.24

저자 소개

무각(無覺)법사스님은 입산하여 20년간을 끊임없이 마음 깨닫는 수행에 정진하면서 보고 듣는 일이 많아진 현대인의 갈등과 방황을 치료하기 위하여 오직 명상서적만을 집필하였다. 우리는 우리가 누구이며 무엇으로 손과 발을 움직이는 주체를 알지 못한 채 세상을 무의미하게 넘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것저것 손대 보아도 우리가 자신을 알지 못하면 수박겉핥기처럼 방황과 갈등에 혼란 당할 수밖에 없다. 잠든 나를 일깨우기 위한 무각스님의 외침은 계속 연재되고 있으며, 마음에 관한 비밀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하고 폭넓게 설하면서 지성으로 번뜩이는 정신적인 처방으로 현대인을 위한 이정표를 세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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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유투브에서 '고통이 우리를 거듭나게 하느니' 로 검색하면 글 읽어주는 동영상으로 올려놓았으므로 전자책 보는 것보다 편하게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무각명상의 저서는 유투브에서 책제목 검색하면 모두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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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정보

들어가기에 앞서

부처의 눈에는 부처만 보이고 중생의 눈에는 중생만 보인다고 한다. 부처는 본성이고 중생은 마음에 해당될 것이다. 본성과 마음의 관계란 깨어있음과 잠듦과 같다. 깨어있으면 잠들지 않고 잠들면 깨어있을 수 없는 까닭이다.

두 가지는 서로 의지하면서 둘 아님으로 존재하기에 언어와 침묵도 마찬가지이며 마음과 부처도 별개의 존재가 아니다. 그런데도 두 가지가 함께 공존하기란 불가능하다. 잠들면 깨어난 상태가 아니듯이 침묵을 사용하면 언어가 멈추고 마음을 사용하게 되면 부처가 멈춘다.

누구든지 부처가 무엇인지 발견한다면 마음에 대해서는 잊을 수밖에 없다. 마음을 사용하여 부처를 이루고자 함은 꿈속에서 먹던 사과를 깨어나서도 찾으려는 것과 같다. 마음이 부처가 아닐 때는 스스로 미혹되었기에 어디에도 부처는 없다. 이것과 저것을 둘러보며 부처를 찾으려는 까닭이다.

그것은 마치 스크린에서 비추이는 영상들이 제각각 존재한다는 미혹함에 빠진 것이다. 그래서 중생의 눈에는 부처가 보이질 않는다. 또한 부처는 모든 영상들이란 텅 빈 스크린에서 나타나고 있는 허상임을 안다. 그렇기에 형상을 지니고 살아있는 존재인 듯 움직이며 활동하지만 그들은 모두 텅 빈 스크린과 다를 바 없는 본성의 존재들이다. 그래서 부처의 눈에는 중생이 보이질 않는다.

우리가 고통 받는 원인은 심어놓은 씨앗에서 다른 열매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만든 업으로 인해 기쁨과 슬픔을 겪는 것은 씨앗을 뿌려놓은 땅에 꽃피고 열매가 맺을 뿐이다. 땅에다 어떤 씨앗을 뿌리든 거부하지 않고 어떤 열매가 맺히더라도 무심하다. 콩 심으면 콩 나는 것은 땅과 아무런 연관이 없다.

우리들 본성은 땅과 같다. 무수한 생을 거치며 육신의 옷을 셀 수 없이 갈아입고, 서로 다른 환경에서 기쁨과 슬픔을 경험하지만 사실 그것들은 내 눈앞을 스쳐지나갈 뿐 나와는 아무런 연관도 없다. 옷을 바꿔 입는다고 사람까지 변하는 것은 아니다.

수없이 많은 밤과 낮이 번갈아 넘나들지만 허공은 이제껏 단 한 번도 밝음과 어둠에 물든 적 없듯이, 우리는 한 걸음도 내딛은 적이 없다. 꿈에서 강물에 빠졌다 한들 물에 젖은 바 없는데도 젖은 옷을 말리려는 부산스런 마음은 욕망과 분노에 의해 중독되고 만다. 그렇기에 고통 받을 일 없는데도 고통을 떼어놓으려 평생을 고통 속에서 줄달음치고 있다.

땅은 씨앗이 속히 나기를 바라거나 혹은 씨앗과는 다른 열매를 거두려는 어떠한 움직임도 없다. 꽃과 열매로 가득한 현상계는 땅으로부터 비롯되었지만 시든 꽃과 열매라고 해서 구원하거나 돕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처럼 꽃피고 지는 상황이 일어나는 것은 땅에 의해서 나타난 것이기 때문이다. 일어나고 멸하는 모든 행위 속에 땅은 늘 함께 하기 에 어떤 것을 배척하거나 칭찬하지도 않으며 다만 무심의 눈으로 지켜볼 뿐 그들의 길을 막지 않는다.

우리들 본성이 땅과 같음을 이해한다면 꽃과 열매란 눈 앞을 스쳐 지나는 바람과 같아 공연히 마음이 들떠 소란을 피웠지만 마음을 일으킬 어떤 것도 존재하는 바가 없음을 안다. 거기에 부처를 찾고 깨달음을 구하려는 것은 헛수고일 뿐이다.

우리가 본래부터 땅이고 그것이 부처임을 이해하면 땅은 꽃과 열매로 인해 고통을 겪지 않는다. 행과 불행, 부귀와 빈천, 생사와 열반, 범부와 성인의 경계란 모두가 눈을 눌러 곁엣달이 생겨나듯 나타났기에, 허공꽃이 어지럽게 피고 짐과 같다.

땅은 꽃과 열매가 있고 없음에 마음 두지 않으며 무심하여 존재하지 않음으로 존재한다. 그러므로 마음으로 행하는 것은 모두 부처와 등지고 달리는 것이며, 부처를 찾고자 하는 것은 허공을 움켜쥐려는 사람처럼 어리석음만 더할 뿐이다. 움켜쥐려고 하지 않으면 그것이 곧 부처인데도 마음 쉬는 법을 알지 못하기에 마음 쉬는 법을 찾고자 한다.

찾지 않으면 마음이 쉬건만, 마음은 쉬지 않고 바쁘게 움직이면서 멈추기를 바라고 있다. 그런데도 마음에 대해서 잊지 못하고 사사건건 마음을 통해 해결하려는 것은 언제든 스스로를 고통의 늪으로 밀어 넣기에 충분하다.

하루에도 수백 번 씩 마음을 바꿔가며 일을 행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업을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지 못하기에 스스로 미혹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은 모두 우리들 마음이 땅과 같은 줄 모르기 때문에 미혹함에 빠졌으므로 깨달음을 구하려는 것이다.

병이 없으면 약도 필요치 않으므로 부처는 우리들 마음으로 지은 것이며 관념상의 존재일 뿐이다. 그렇기에 진리를 가리키려 하고 길을 밝혀주려는 것은 모두 마구니들이다. 꽃이란 땅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환상의 경계와 같은데 꽃과 열매처럼 피어난 현상계에서 가리킬 것이 무엇이며, 밝혀야 할 길이 어디에 있겠는가,

우리들 마음이 바로 우리가 쉴 곳이다. 이 마음을 버리고 쉴 곳을 따로 찾는다면 무수한 생사를 전전해도 결국은 찾을 수 없다. 이 마음을 벗어나서는 어떤 부처도 없음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 마음과 부처는 다르다고 믿는 까닭에 부처를 보려면 이 마음을 벗어나야 한다고 여긴다.

이것은 모두 마음을 흔들어 요동치는 거품을 실재하는 무언가로 인정하며, 마음을 기준 잡아 움직이는 것이기에 부처의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땅의 마음은 꽃과 열매가 세상에 넘쳐나도 실재하는 어떤 개체도 없음을 안다. 거기에는 보이고 들려오는 생각에 모양을 짓거나 본래 고요한 마음을 흔들어 거품을 일으킬 필요가 전혀 없다.

생각이란 보이고 들려오는 것으로 밉고 곱고에 대한 차별 없는 평등한 성품이지만 그것을 언어와 과거의 이미지로 덮어씌워 생각의 모양 짓는 것을 우리는 생각이라고 한다. 이처럼 생각과 생각의 모양 짓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것이며 마음도 그와 같다. 마음이란 본래의 생각과 같아 차별 없고 평등한 성품으로 고요한 호수처럼 잔잔하다. 그런데 꽃과 열매에 심취하여 본래 텅 빈 것을 깨닫지 못한 탓으로 마음을 흔들어 일어난 거품을 마음인 줄 아는 것이다.

생각과 마음은 아무런 허물도 없건만 사사건건 마음을 문제 삼으며 마음타령을 하고 있다. 영원히 번뇌가 사라진 평안을 얻고자 이 마음을 벗어나 저 마음을 추구하고 있다. 그러나 추구하는 바를 지녔다는 것은 잔잔한 마음에 풍랑을 일으킨 탓에 고요한 땅의 마음을 거품으로 요동치게 만들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생각의 모양 짓기를 생각인 줄 알고, 마음도 역시 마음의 거품을 마음으로 사용해 온 탓으로 표현상의 혼란을 피하기 위해 잔잔한 땅의 마음을 본성·참나·본래 앎·불성·부처 등으로 표현하고, 그 마음에 언어나 감정·기억·경험·상상 등으로 비교하면서 선택하도록 요동치게 만들어 거품이 일어난 것을 일상적인 마음이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과 마음의 거품이란 물과 얼음처럼 다를 바 없음에도, 이 마음과 저 마음을 쪼개고 나누어 놓았기에 다른 것처럼 되어버렸다. 번뇌와 해탈, 생사와 열반, 범부와 성인, 중생과 부처 등이 다를 바 없으나 자신이 땅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면 어째서 번뇌와 해탈, 중생과 부처가 다를 바 없다는 의미를 전혀 알 길이 없다.

이와 같이 다를 바 없는 것을 서로 다른 것으로 보게 되므로 본성과 마음은 도저히 닿을 수 없도록 끝없이 벌어져 삶과 죽음의 바퀴를 빠져 나올 수 없다. 우리들 본성이란 땅이라는 사실을 발견하면 꽃이나 열매들은 스치고 지나가는 허공꽃이라 본성을 흔들어 마음을 일으킬 필요가 없다. 그래서 부처는 혼란 받지 않고 고통당하지 않는다. 마음을 흔들어 거품을 일으키지 않는 까닭이다.

마음을 일으키지 않음이 부처이며 누구나 부처이면서도 꽃 피고 지는 현상계에서는 따로 찾을 만한 진리란 아무 것도 없음을 알지 못하고, 부처란 볼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음을 모르는 탓에 부처를 보기 위해 마음을 일으킨 까닭에 부처와 등지고 달리는 것이다. 이러한 이해를 통해 깨달음을 구하고자 육신만을 구속하기보다는 내게 주어지는 모든 것을 열린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을 구도자라고 일컫는 말이리라. 무각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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