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허공에 자수를 놓아

소설  by 박다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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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정보

분야
소설
작가
박다빈
출판형태
전자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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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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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 박다빈
사람이 살림을 하듯 마음도 살림을 합니다.
좋은 살림 도구는 더 나은 생활을 열어 줍니다.
우리는 마음이 사용하는 살림 도구를 만듭니다.


· 카쿠코 매거진
지금 당신의 마음이 살고 있는 공간은
어떤 것들로 채워져 있나요?
이곳은 마음이 쓰는 살림 도구들을
만드는 공간입니다.
아름다움만큼이나 실용성을 생각하는 우리는
당신의 마음이 좀 더 쾌적하고 편안해질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합니다.

우리의 비전은 가족과 함께 읽을 수 있는
책을 만드는 것입니다.
소박하지만 마음에 오래 남는
집밥 같은 글을 추구합니다.
당신 혼자만을 위한 다락방,
푹신한 소파, 튼튼한 샌드백,
성능 좋은 청소기, 커다란 창문,
금방 내린 커피 한 잔,
오븐에서 막 나온 빵 한 조각,
잔잔한 자장가가 되고 싶습니다.


· 블로그
https://brunch.co.kr/@parkdab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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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동병상련의 정
다 자란 멍게의 뇌는 사라진다
내부 고발자
터진 입
똑같은 사람에게 계속 거절당하기
사랑의 종류는 무한할 텐데
남의 인생 무게를 재어 보는 일
능력만 좋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
옳지 않은 일에 함께 화낼 수 있는 사람
성숙한 마음에 대한 생각 변화
가까운 미래를 향해 미리 내리는 선택
현명하게 싸우기
마음 여닫기의 개인차
나에게 운명은 충동성의 다른 말이었다
어느 면접관의 일기
인연의 끝은 두 번 온다
표현력이 부족하다고 하는 사람
나를 지켜 주겠다던 사람들
불안이 쓰고 오는 가면
비행운 같은 흔적을 남기고 간 사람들
개인적 경험일 뿐인데
내가 만나는 사람의 전적
법정
돋보기
우린 왜 헤어진 걸까요
모녀 전쟁
발언 선택권
강원도 가지 마
세대 차이
그리움
여기 아니야? 그럼 저쪽 끝으로!
입으로만 멈추잖아
우린 멀어졌어
스트레스 관리
뫼비우스 밖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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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정보

이런 날, 저런 날, 종잡을 수 없는 날들이
계절의 허공에 자수를 놓았습니다.
그것은 누구도 무엇이라 짐작하기 어려운 모양의 자수였습니다.
점들이 모여 선이 되고 곡선이 되고 나아가 모양이 되듯,
삶은 느린 그림을 착실히 그려 나갔습니다.

당신의 날들은 당신의 계절 허공에 어떤 자수를 놓고 있나요?
그 자수의 모양을 알아맞히는 사람이 나타나
한 시절의 맥박을 모두 헝클어 버리기도 하나요?

○ 본문 미리 보기

거절당하면, 너무 단호하게 거절을 당하면, 비참하잖아. 왜 안 비참해. 나는 비참해. 그래서 자꾸 확인하게 되더라고. 나에 대한 그 사람 마음이 거절만으로 가득 차 있지는 않다는 거. 그 사람이 나에 대해 좋은 감정과 의미를 조금은 가지고 있다는 거. 그런 것들을 확인하려 하게 되더라고. 빈틈없는 거절을 당할 때마다. 누가 나를 거절하는 이유가 나 자체인 건 아니라는 확신을 가지고 싶었어. 나는 그런 확신을 항상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야. 누가 나를 살짝만 밀어내도, 내 존재 가치에 대한 의문을 가지는 사람이 나야(37p).

사실은 내가 도망을 잘 치거든요. 아닌 건 아니라고 해 놓고, 그 말하자마자 냅다 튀어 버리는 거죠. 그 말을 꺼냄과 동시에 그 사람하고 헤어져 버리는 거예요. 아니네 맞네 옥신각신하며 싸우려면 너무 피곤하니까(40p).

세상을 더 좋은 방향으로 바꾸려는 노력을 계속 하되, 세상의 어두운 부분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거기에 잡아먹히지 않는 법을 끊임없이 개발하며 살아가는 게 지금 이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인간이라고 나는 생각해(74p).

모든,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균형을 잡으려고 하니까, 너무 무리하게 된다. 관계 균형이 깨지거나, 관계 자체가 깨지는 게 두려워서 나를 먼저 깨뜨리게 되니까. 이제 그만 그러고 싶어. 뜬 눈으로는 눈치만 살피면서 골목마다 다른 내가 되어서 걸어가려고 하는 일, 관두고 싶어. 그만할래. 진짜 내가 뭔지 이젠 나도 잘 모르겠어. 내가 어느 골목에서 어떻게 걸으며 살던 사람인지 너무 많이 잊은 것 같아(78p).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어도, 그 사랑이 안고 있는 독에 감염되어 내가 나를 멍들고 병들게 하지 않을 만큼의 면역력을 기르고 싶다(79p).

이젠 그것들과는 종류가 다른 운명에게 곁을 내어 줄거야. 인정해 본 적 없던 종류의 인연 앞을 서성거릴래. 그동안 내가 아꼈던 것들보다 채도가 낮고 소리가 작고 덜 움직이고 오래 이어지는 것들이랑 살아갈래. 그러면서 굳이 그것들을 운명, 인연이라고 이름 짓지는 않을래(83p).

우리 인연이 죽은 것은 우리가 헤어졌기 때문이고, 죽은 그것이 여태 살아 있는 것은 내가 그것을 여전히 좋아하기 때문이다. 하여 그것은 인연의 생과 사, 그 경계에 있다. 앞으로도, 시간의 흐름이 뒤엉키다 못해 터져 버릴 때마다, 온갖 시간이 섞여 탁해진 물결이 너를 이리로 데려와 주었으면 좋겠다(91p).

당신 어깨가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날이면, 나는 당신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당신 외부에는 조금도 없고 오직 당신 안에만 존재하는 것들에 관한 질문들을 넌지시 건네었습니다. 그렇게 나는 당신을 당신 안으로 돌려보내려고 했습니다. 거기만큼 당신을 아늑해지도록 만들어 줄 곳은 없으니까. 거기서는 당신이 남들 표정을 힐끔힐끔 점검한 뒤에 기분을 절반쯤 가리듯 웃지 않아도 되니까(137p).

내가 자신감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얄팍한 자만심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밝혀질 때마다, 나는 입을 반쯤 벌리고 막힌 숨을 겨우겨우 뱉어냅니다. 터무니없다, 터무니없어. 나를 모르고도 나를 안다고 뻐기는 일은 왜 이렇게 쉬운가. 분명한 근거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조잡한 핑계와 변명들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드러날 때마다, 나는 이음새가 고장 난 문처럼 고개를 삐걱삐걱 내젓습니다(143p).

어째서 나를 그리워했다는 사람을 나도 번번이 그리워했을까. 서로가 서로를 그리워하는 순간마다 기적이 일어나 서로 연락이 닿거나 길에서 마주쳤다면, 그랬다면 우린 서로를 그만 그리워했을까. 남이야 어찌 보건 서로를 으스러뜨릴 듯 부둥켜안거나 얼굴과 얼굴을 비비적대며 다시 서로만의 뭔가를 만들어 나갔을까. 글쎄, 그건 모를 일이다. 세상에는 그리움으로 남아 있을 때 가장 아름다운 것도 있다(168p).

우리는 다 커서도 서로에게 자기 증명사진을 선물했다. 마치 헌 물건을 새 물건으로 바꿔 주듯 “이제 이거 넣고 다녀.”라며. 물론 우리 둘은 서로의 증명사진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이제 없는 그 얼굴들을 한 번씩 꺼내 보곤 했다. 삶에 치여 등허리가 터져 버린 것 같은 날에, 모자란 물로 진통제를 간신히 삼키듯이. 그때 우리에게 그런 시간이 있었어, 그런 혼잣말을 하듯이. 그래서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 있을 수 있는 걸까, 아무에게도 물어보지 못한 채로. 그저 엄지와 검지 끝으로 작은 사진을 꺼내 한참을 들여다보곤 했다. 아무리 눈을 마주쳐도 눈이 마주쳐지지 않는 것 같은 그 얼굴들을 뚫어져라 바라보곤 했다(17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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