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인1

소설  by 차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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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정보

분야
소설
작가
차영민
출판형태
종이책
인쇄컬러
표지-컬러, 내지-흑백
판형
A5
페이지수
161p
출판사
부크크
ISBN
979-11-86072-40-0
출판일
2014.11.22

저자 소개

1989년 부산 출생, 대학에서 문예창작학 전공


저서: 그 녀석의 몽타주, 소년 달리다 외


블로그 : http://blog.naver.com/cym8930

목차

1. 사건접수
2. 접견
3. 피고인의 진술
4. 만남
5. 1차 공판
6. 피고인의 가족
7. 현장검증
8. 2차 공판
9. 난관
10. 협상
11. 3차 공판
12. 오지나 기자
13. 새로운 증거
14. 할아버지의 마음
15. 마지막 증인
16. 최종변론
17. 새로운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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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정보

재판이 끝날 때까지 진실은 아무도 모른다. 단 1퍼센트라도 가능성이 있다면 끝까지 파헤쳐라

숨겨진 진실을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변호사 최헌제의 재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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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건 접수

서초구 법조단지 버스 정류장 옆에는 빛바랜 회색 빌딩이 있다. 다른 빌딩보다 그리 크지 않은 9층짜리 빌딩인데 1층은 은행이고 나머진 모두 법률 사무소다.
법률사무소 믿음, 법률사무소 소망, 법률사무소 성실, 법률사무소 함께 등등 이름이 예쁜 중소형 사무실이 있고 법무사 사무실도 여럿 있다. 특이한 건 3층에는 댄스학원이 있다. 건물주가 무슨 생각으로 댄스학원을 들여놨는지 모르겠다. 그 3층 댄스학원 바로 옆에 변호사 최헌제 법률사무소가 있다. 덕분에 최신유행 댄스음악은 자연히 섭렵하는 중이다. 내 의지와 절대 상관없이.
난 갓 삼십 대에 들어섰고 팔팔하기는커녕 막중한 스트레스 때문에 점점 시들어가는 남자다. 남들은 나더러 ‘변호사’님이라 부르지만 정작 난 변호사라는 명칭이 부끄럽다. 아침 일찍 부지런하게 출근하고 밤이 늦어서야 퇴근하지만 문제는 일이 없다. 없어도 너무 없다.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랬으며 내일도 그럴 듯하다. 연수원을 수료하자마자 연수원 때 대출 받은 목돈으로 무턱대고 개업했는데 지금 땅을 치며 후회하는 중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어디라도 들어가서 취직을 했어야 했다.
개업할 때만 해도 가만히 있어도 일거리가 알아서 잘 들어올 줄 알았다. 굳이 큰 일이 아니더라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상담료라도 받으면 굶어죽을 걱정은 없을 줄 알았다.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법원인 서울중앙지방법원 옆에 있는 사무실이라 사람들이 어련히 알아서 찾아오겠다고 생각했다.
그건 나의 아주 크나큰 실수였다. 법조단지인 이곳엔 내 사무실 말고도 수백, 어쩌면 천 단위가 될지도 모를 사무실이 피 튀기는 경쟁을 하고 있었다. 벌써 내 사무실이 있는 9층짜리 빌딩만 해도 법률사무소가 열 개가 넘어선다. 문제는 내 사무실만이 아니라 이 빌딩에 사람들 자체가 발길이 뜸하다. 그나마 은행과 요란한 댄스학원만 꽤나 북적거릴 뿐.
“변호사님, 점심 먹을 땐데 오늘은 뭐 먹을까요?”
맞은편 책상에서 컴퓨터만 뚫어지게 보던 사무장이 자신의 손목시계를 가리키며 물었다. 하는 일도 없는 시간은 참 빨리도 흘렀다. 별 다른 움직임이 없으니 아침 먹은 것도 소화되지 않았는데 벌써 점심이라니.
“라면이나 끓여 먹자.”
“에이, 라면이라뇨. 벌써 열흘 동안 점심때면 라면만 끓여 먹었잖아요. 끓여먹기만 했나요, 간식대용으로 부셔먹고 심지어 그저께는 감기 걸린 저한테 라면으로 죽 끓여 먹으라고 했죠? 이젠 라면 냄새라면 입덧까지 합니다. 이놈의 라면은 줄어들 생각도 안 하네요. 어차피 저더러 끓이라고 할 거잖아요.”
이 사무실에 그나마 풍족하게 있는 건 매운맛 라면이다. 얼마 전에 작은 사건을 하나 맡았다. 의뢰인은 연세가 지긋한 할머니인데 자신의 손자를 빼달라고 했다. 사건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애들끼리 큰 싸움이 났고 의뢰인의 손자는 그저 가담자였는데 어쩌다보니 주동자 부류로 몰렸던 것이다. 아주 무죄로 만들어줄 순 없고 미성년자니 소년부로 넘겨 보호관찰과 사회봉사로 마무리하게 해줬다.
결과적으로는 의뢰인의 요청대로 빼내 준 셈이다. 할머니가 처음 의뢰를 해올 때 당장 착수금은 줄 형편이 안 돼서 사건을 마치면 한몫 챙겨 준다고 했다. 그 한몫 챙겨준 게 바로 라면이다. 그것도 열다섯 상자씩이나. 종류도 똑같은 매운맛라면.
알고 보니 할머니는 손자와 단둘이 살았고 형편이 좋지 못했다. 돈은 없고 그나마 동사무소나 복지 단체에서 가져다 준 라면이 전부라고 했다. 할머니는 라면을 차곡차곡 모아뒀는데 이걸 모두 수임료를 대신했다. 다른 사무실에선 수임료 대신 지역 농산물이나 조상대대로 내려온 족보까지 받는 일도 있었다는데 나는 라면이라니.
형편도 어려운 할머니에게 라면을 받자니 괜히 남의 밥을 빼앗아 먹는 거 같아 처음엔 거절했다. 그래도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절대 안 되겠다는 할머니의 확고한 의지 때문에 결국 받고 말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점심때마다 라면으로 열심히 끼니를 챙기는 중이다. 며칠 먹으니까 나도 질렸지만 같이 일하는 사무장도 역시 질렸던 모양이다.
“그래도 빨리 먹어 치워야지. 유통기한도 얼마 안 남았던데.”
“오늘은 좀 쉽시다. 하도 라면만 먹으니까 입에서 라면스프 냄새만 나잖아요. 밥이 싫으면 짜장이라도 먹던지요. 죽겠습니다, 속이 따갑고 화장실에서 큰 일 볼 때마다 누가 엉덩이를 바늘로 찌르는 거 같습니다!”
“유통기한 얼마 안 남은 것만 빨리 먹어치우자니까.”
“위장병 나면 변호사님이 손해배상 해주실 겁니까? 다른 거 먹자니까요.”
“사무장만 힘드나, 나도 힘들다…….”
사무장과 점심 메뉴 하나로 한가롭게 티격태격했다. 옆에 있는 댄스학원은 아직 낮인데도 빌딩 전체를 댄스음악으로 힙합 느낌 충만하게 뒤흔들었다. 낮에는 좀 자제하라니까, 참 사람 말을 말 같지 않게 들어준다. 사무장과 한참 자그락자그락하다가 오늘은 내가 두 손 들고 말았다. 밥 대신 우리 동네에서 가장 싼 짜장면을 시켜먹는 걸로 협상을 봤다. 사무장이 중국집에 주문 전화를 한 뒤 사무실은 다시 조용해졌다.
사무장은 어느새 스마트폰 앱게임에 열중했고 난 컴퓨터로 인터넷 창을 열었다. 포털사이트 지식인 코너에 법률 관련 질문이 올라오면 열심히 답변해줬다. 돈은 안 되는 일이지만 이거라도 해야 내가 진짜 변호사 같았다. 다른 사무실 변호사들에게 듣기를 가끔 이걸 통해서 사건 수임도 가능하다고 했다. 막연하지만 자그마한 가능성이 있다면 무작정 기대고 싶었다.